
올해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하는 최귀선 헝가리 한인회장.[왕길환 기자]
“72년전 아버지가 받으셨던 훈장을 제가 받게됐습니다. 감회가 참 남다르죠.”
27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2026 세계한인회장대회’에서 만난 최귀선 헝가리 한인회장은 올해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자로 선정된 소감을 묻자 아버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최 회장의 부친 최석기 씨는 제7보병사단 육군 하사로 복무하며 1954년 4월 20일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금성화랑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 훈장은 한동안 가족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었다. 그러다 아들이 아버지의 훈장을 다시 찾은 것은 2019년 4월 29일이다. 최 회장은 60여년 뒤 아버지의 훈장을 찾아내 훈장증을 받았다.
“아버지가 훈장을 받으셨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이제 국민훈장을 받으니 그 감정이 조금은 이해될 것 같아요.”
2019년 아버지의 훈장을 찾고 훈장증을 받는 최귀선 회장.[본인 제공]
최 회장은 서울에서 태어나 재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에 진학했다. 학사 13기인 그는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1992년, 곧바로 헝가리로 향했다.
당시만 해도 헝가리는 한국인에게 낯선 나라였다. 최 회장은 오히려 그 점에서 가능성을 봤다.
“왜 헝가리였느냐고요?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이었으니까요. 남들이 많이 가지 않는 곳에서 기회를 찾아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헝가리에 도착한 그는 무역회사인 ‘삼마(SAMMA INTERNATIONAL)를 설립하고 한국 제품을 수입해 현지 시장에 팔았다. 처음에는 수성팬 등 문구류를 비롯해 생활용품을 취급했고, 사업을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수입·판매로 확대했다.
사업을 키우면서 현지 시장에도 깊숙이 들어갔다. 헝가리 최대 문구 유통회사인 ‘CSEPELI PIERT’를 인수하며 현지 유통망을 확보했다. 한국 상품을 헝가리에 소개하는 동시에 현지 시장의 흐름을 읽으며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사업 기반을 마련한 뒤에는 개인 사업을 넘어 한국과 헝가리 기업을 연결하는 역할에 나섰다.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World-OKTA) 부다페스트지회 초대 지회장을 맡은 것이다. 동유럽·CIS 지역 경제인으로 활동하며 헝가리에 진출하려는 한국 중소·중견기업의 현지 정착과 수출을 지원했다.
2018년에는 부다페스트에서 월드옥타 유럽·CIS 경제인대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국내 중소기업 9개사가 현지에서 모두 150만달러 규모의 수출계약을 맺기도 했다.
“우리 기업들이 헝가리에 와서 사업을 할 때 현지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부터 어려움이 많습니다. 제가 먼저 와서 경험한 것을 나누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도 헝가리에 진출하려는 한국 중견·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회계·세무·경영 컨설팅과 국제무역 관련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세계한인회장대회 참가차 방한한 최귀선 회장.
헝가리는 동유럽국가로는 처음으로 1989년 한국과 수교를 맺은 국가다. 이 나라에 첫 발을 디뎠을 당시 한인사회는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았다고 한다. 당시 한국인은 약 650명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삼성SDI 등 한국 기업의 진출이 본격화하면서 한인사회도 빠르게 커졌다. 최 회장은 현재 공식 체류자가 약 8천명이며 비자 신청·재신청자 등을 포함하면 1만명, 한국 기업 공장 근로자까지 넓히면 1만5천~2만명가량이 헝가리에 머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커진 한인사회를 하나로 묶는 일도 그의 몫이 됐다. 2024년 한·헝가리 수교 35주년을 계기로 출범한 헝가리 한인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그동안 온라인 커뮤니티 형태의 한인단체는 있었지만, 정식 한인회는 아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단합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송년회도 하고 체육대회도 했죠. 500명씩 모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인사회가 커지면서 필요한 역할도 달라졌다. 법률·의료·교육 등 생활 정보를 연결하고 사건·사고에 대응하는 조직으로 한인회의 기능을 확대했다.
2024년 12월 송년회에는 400여 명이 참석했다. 헝가리 한국대사관은 당시 최 회장과 임직원들의 재외동포 보호 및 국익 증진 활동을 크게 평가하기도 했다. 이듬해 3월에는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유럽한인 차세대·다문화·입양동포 한국어 웅변대회를 주관해 열기도 했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다른 나라 친구들을 만나는 기회이고, 헝가리를 기억할 수 있도록 선물을 준비했다”며 환영했다.
최 회장은 자신의 임기를 마친 뒤에도 조직이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가 계속 회장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한인회를 잘 정비해놓고 다른 분에게 넘길 생각입니다. 누가 맡더라도 계속 운영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게 중요하죠.”
그의 활동 범위는 한인사회와 경제를 넘어 헝가리 현지사회로도 넓어졌다.
아내 원선미씨와 함께 현지 취약계층을 돕는 ‘희망의 조각들’ 재단을 설립하고 초기에 6천만원을 출연했다. 노숙인들에게 음식과 생활용품을 제공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자신이 모은 '한국해', '동해' 표기된 고지도를 전시하는 최귀선 회장.[본인 제공]

최귀선 회장이 모은 '한국해', '조선해'가 표기된 지도들.[본인 제공]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일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한인회장을 맡기 전부터 인터넷 경매 등을 통해 한국 관련 고지도를 하나둘 사 모으기 시작했다.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한국해’ ‘동해’ ‘일본해’라는 지도의 표기였다.
“일본해라고 표기된 지도도 있고, 한국해나 동해로 표시된 지도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만든 지도 가운데도 ‘조선해’라고 표기된 것이 있습니다.”
그가 집중적으로 모은 지도는 1700~1800년대에 제작된 것들이다. 한국해·동해 등의 표기가 담겼거나 울릉도와 독도가 표시된 지도들이다. 인터넷 경매를 중심으로 사비를 털어 2년 반에서 3년가량 집중적으로 수집한 결과 150장을 넘겼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100유로 안팎의 지도부터 한 장에 1만유로가 넘는 경우도 있다. 그중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당시 헝가리 총리에게 선물받은 지도도 있다. 한국해 표기와 울릉도·독도가 표시된 고지도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받은 지도도 소장하고 있다.
최 회장은 자신이 모은 지도를 단순히 개인 소장품으로 남겨두지 않을 계획이다. 현재는 스캐너를 별도로 구입해 지도 한 장 한 장을 디지털화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한국 정부에 기증할 계획이다.
“제가 가지고만 있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고 다른 나라에서도 전시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최 회장 부부는 50대가 넘은 나이에 베이비박스를 통해 태어난 한국인 아이를 입양했다. 입양을 먼저 생각한 것은 아내였다. 두 사람은 아이를 가족으로 맞이한 뒤 지금까지 함께 성장 과정을 지켜봤고, 현재 13살이 된 아들에게도 자신의 입양 사실을 숨기지 않고 알려주고 있다.
2024년에는 아들과 함께 한국을 찾아 베이비박스가 있었던 곳을 비롯해 아이가 입양되기까지의 과정을 직접 돌아봤다. 단순히 자신의 출생지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나는 어디에서 왔고 왜 입양됐을까’라는 아이의 의문을 가족이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최 회장은 “아이가 커가면서 궁금한 것이 생기지 않겠느냐”며 “그런 부분을 함께 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오는 10월 말 책으로도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최 회장의 아내가 직접 집필하고 있는 책에는 아이가 가족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현재까지의 생활, 입양 과정에서 가족이 마주했던 고민과 아이가 품어온 의문 등이 담길 예정이다.
지난해 3월 월드옥타 웹 매거진에 표지인물로 소개된 최귀선 회장.[웹 매거진 캡처]
최 회장은 현재 부다페스트 도심에 한국 전통정원을 조성하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현지 한국문화원장과 대사와도 이 계획을 공유하고 있다.
이 공원의 설립은 현재 끝을 모르고 번져가는 한류의 열풍을 잇는 것이라 보고,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다.
“한류요. 대단합니다. 현지인 댄스팀, 고전무용팀(2개), 사물놀이팀이 있을 정도이고, 한국 노래를 하는 합창단도 있습니다.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공항이나 상점에 가면 한국말로 인사를 할 정도입니다.”
최 회장은 2009년 지식경제부 장관 표창을 받았고, 10년뒤인 2019년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과 대한상공회의소 국무총리 표창을 잇달아 받았다. 그리고 올해 국민훈장 동백장을 28일 받는다.
1954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금성화랑 무공훈장을 받은 아버지와 2026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 아들. 두 훈장 사이에는 72년의 시간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한 청년이 낯선 나라를 선택해 삶의 터전을 만들고, 한국과 헝가리 사이에서 기업과 사람을 연결해온 34년의 시간이 자리하고 있다.
최귀선 월드옥타 헝가리 부다페스트지회장이 현지 인사들과 교류하고 있다.[본인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