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르무즈 사태가 장기화되며 중소 제조업체가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AI생성이미지(ChatGPT)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다시 고조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부담이 섬유패션 제조업까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자금력과 구매 협상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원료·에너지·운송·보험·금융비용 상승을 동시에 떠안아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밀려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이를 단순한 비용 증가가 아니라 위기 이후에도 중소기업이 공급망에 복귀하지 못할 수 있는 ‘중소기업 배제 효과(SME exclusion effect)’로 경고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봉쇄된 것은 아니지만 통항은 정상 수준을 크게 밑돈다. 케플러(Kpler) 잠정 집계에 따르면 9월 8일 해협을 통과한 상품 운반선은 6척으로 최근 10일 평균 12척의 절반 수준이었다. IEA에 따르면 2025년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석유가 호르무즈를 통과했으며 이는 세계 해상 석유교역의 약 25%다. 이 가운데 약 80%가 아시아로 향했고, 세계 LNG 교역의 약 20%도 이 항로에 의존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파이프라인으로 우회시킬 수 있는 원유는 하루 약 350만~550만 배럴에 그친다. 최근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에 근접하면서 에너지 가격 충격도 다시 확대되고 있다.
섬유업계에서 가장 직접적인 파급 경로는 폴리에스터다. 원유에서 나프타, 에틸렌·MEG와 PX·PTA를 거쳐 폴리에스터 원사로 이어지는 구조 때문에 중동산 원유와 나프타 공급이 흔들리면 합섬 원료 가격이 즉각 영향을 받는다. 파이버2패션(Fibre2Fashion)의 텍스프로(TexPro) 자료에 따르면 9월 초 중국 도착 기준 MEG 가격은 톤당 735달러에서 815달러로 한 주 만에 10.88% 올랐고, 동남아시아 가격도 855달러로 9.62% 상승했다. CCF그룹도 중국 MEG 현물이 톤당 6750~6800위안까지 급등했다고 분석했다.
비슷한 충격은 올해 봄에도 확인됐다. 인도 폴리에스터 업체 필라텍스(Filatex)는 당시 원료비가 약 30% 올랐다고 밝혔고, 인도산 폴리에스터 스테이플파이버(PSF)는 kg당 100루피에서 126.5루피까지 상승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봉제용 실 가격이 15.5% 올라 원료 충격이 의류 제조 단계까지 전이됐다. 대형 기업은 선구매와 장기계약, 공급선 다변화로 일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지만 중소 제조업체는 현물구매 의존도가 높아 가격 급등을 그대로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UNCTAD가 중소기업을 특히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 세계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약 90%, 고용의 70%, 세계 GDP의 약 50%를 차지하지만 공급처와 금융 접근성이 제한적이다. 개발도상국 소기업의 직접 수입 관련 규정 준수비용 중간값은 수입 제품 가치의 19.4%로 중기업 17.5%, 대기업 14.7%보다 높았다. 금융 접근을 ‘중대하거나 매우 심각한 장애’라고 응답한 비율도 소기업 48%, 중기업 42%, 대기업 38%로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높았다.
섬유패션산업에서는 이 취약성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원사·직물·염색가공·봉제 등 다단계 중소 제조업체가 촘촘히 연결돼 있고 납기 안정성이 거래 유지의 핵심 조건이기 때문이다. 원료 가격 상승과 운송 지연이 겹치면 매출채권 회수기간이 길어져 운전자금 부담까지 커진다. 글로벌 브랜드와 대형 벤더가 주문을 재무 건전성과 납기 대응력이 높은 공급업체로 집중할 경우 소규모 업체가 거래망에서 이탈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UNCTAD가 무역금융과 유동성 지원을 핵심 대응책으로 제시한 배경이다.
다만 호르무즈 사태를 글로벌 컨테이너 운임 전체의 폭등으로 단순화할 필요는 없다. 9월 초 드류리(Drewry) 세계컨테이너운임지수는 40피트 컨테이너당 4465달러로 전반적으로 보합 수준이었고, Freightos 집계에서도 주요 아시아발 미주·유럽 노선 운임은 주간 기준 1~3% 하락했다. 현재 더 직접적인 부담은 호르무즈·홍해 인근의 선박 위험비용과 벙커유, 보험료, 에너지·석유화학 원료 가격이다.
9월 초 한국 대통령실 자료에 따르면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61%, 나프타의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나프타는 합성섬유와 합성수지의 핵심 기초원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올해 봄 호르무즈 충격 당시 한국의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2월 69.5%에서 4월 50.4%로 낮아졌고 미국산 비중은 19.0%에서 26.0%로 높아졌다. 그러나 같은 기간 중동산 원유 도입가격은 배럴당 64.2달러에서 111.9달러로 뛰었고 평균 운송단가도 2.1달러에서 7.4달러로 3배 이상 상승했다.
국내 섬유패션산업은 약 5만 4000개 사업체 가운데 10인 미만 사업체 비중이 91%에 달해 비용 충격에 더욱 민감하다. 특히 방사·제직·염색가공과 합섬 원료를 사용하는 중소업체는 원료비와 전력·연료비 상승을 동시에 받을 가능성이 높다.
향후 핵심 변수는 해협의 물리적 개방 여부보다 선사와 보험사가 언제 정상 운항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느냐에 있다. 기업들도 단순한 운임 협상을 넘어 합섬 원료와 원사·염료의 제2 공급처 확보, 원료·에너지 가격 변동을 반영할 수 있는 계약조건, 납기 여유 확대, 운전자금 확보에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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