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더에러 상해 매장

K패션의 중국 오프라인 진출이 다시 빨라지면서 ‘첫 매장을 어디에 내느냐’가 중국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본지가 최근 중국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준비 중인 주요 K패션 17개 브랜드의 중국 1호점 입지를 분석한 결과 상하이 8개, 베이징 5개, 항저우 3개로 집계됐다. 17개 가운데 16개 브랜드가 이들 3개 도시를 중국 사업의 첫 출발점으로 택했다.
도시별로는 상하이 집중도가 가장 높지만 같은 1선 도시라도 선택하는 ‘상권의 성격’은 뚜렷하게 갈린다. 상하이에서는 안푸루·동후루·화이하이루를 잇는 로드숍 상권으로 한국 브랜드가 몰리고 있고, 베이징에서는 타이구리 싼리툰이 K패션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했다. 항저우는 IN77과 MIXC 등 주요 상업시설을 기반으로 중국 사업의 시장성을 검증하고 빠르게 점포를 확대하는 출발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중국 진출이 대형 백화점과 쇼핑몰 입점을 통해 유통망을 확보하고 점포 수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에는 1호점부터 브랜드 정체성을 가장 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상권을 선점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매장을 내느냐’에 앞서 ‘어디에서 처음 보여주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앤더슨벨 북경 타이구리 산리툰 매장
상하이 8곳 최다…안푸루 중심 K패션 ‘로드숍 벨트’
17개 브랜드 가운데 중국 첫 매장을 상하이에 냈거나 낼 예정인 곳은 렉토, 무신사 스탠다드, 무신사 스토어, 시눈, 락피쉬웨더웨어, 이미스, 마르디 메크르디, 아더에러 등 8개다. 전체 조사 대상의 절반에 육박한다.
특히 최근 상하이 진출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백화점보다 ‘거리’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신사는 지난해 12월 무신사 스탠다드를 상하이 화이하이루 백성백화점에 열면서 별도로 안푸루에 무신사 스토어를 선보였다. 시눈은 지난해 6월 상하이 동후루에 첫 매장을 냈으며, 이미스는 올해 7월 화이하이루·안푸루 상권에 진입했다. 마르디 메크르디도 올해 하반기 상하이 안푸루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락피쉬웨더웨어는 지난해 10월 상하이 난징시루 핵심 상권의 로드숍형 상업지 ‘펑성리(丰盛里)'에서 중국 오프라인 사업을 시작한 뒤 현재 25개 매장까지 확대했다. 아더에러는 지난해 10월 상하이 징안취 산시베이루에 첫 매장을 내고 현재 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상하이 도심의 주요 거리와 상권을 따라 한국 패션 브랜드의 개별 매장이 연결되는 모습이다.
안푸루를 비롯해 우캉루·동후루·화이하이루로 이어지는 상하이 도심 상권이 K패션의 새로운 집결지로 부상한 배경에는 중국 젊은 소비층의 패션 소비 방식 변화가 있다. 이 일대는 카페와 편집숍, 디자이너 브랜드, 라이프스타일 공간이 밀집해 있으며 거리 자체가 샤오홍수 등 SNS 콘텐츠의 배경이 되는 대표적인 상권이다.
상하이시 역시 올해 1월 쉬후이구의 한국 패션 브랜드 집적 현상을 별도로 소개하며 안푸루 무신사 스토어와 한국·중국 브랜드 구성을 주목했다. 무신사도 안푸루 입점 K패션 브랜드를 대상으로 현지 유통 환경과 시장 트렌드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이 일대를 중국 사업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상하이 로드숍이 뜨는 핵심 이유는 매장이 더 이상 상품만 판매하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 패션 소비에서 샤오홍수와 더우인 등 콘텐츠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브랜드를 발견하고 검색한 뒤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가고, 다시 매장과 상품을 촬영해 SNS에 올리는 소비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콘텐츠→검색→방문→구매→재확산’이 하나의 소비 동선으로 연결되면서 브랜드가 공간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로드숍의 가치도 높아졌다. 인테리어와 상품 구성뿐 아니라 음악, 오브제, 이벤트, 팝업 등을 통해 매장 전체를 브랜드 콘텐츠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 진출에서 백화점의 집객력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어디에서 발견되는 브랜드인가’가 중요해졌다. 특히 사진과 영상으로 확산되기 좋은 상하이 거리 상권은 중국에서 아직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하지 못한 K패션 브랜드가 첫 이미지를 만드는 데 유리하다.
이미스 상해 매장
베이징은 타이구리 쏠림…‘어디에 있느냐’가 브랜드 체급 결정
베이징에서는 타이구리 싼리툰 쏠림이 더욱 뚜렷하다. 조사 대상 가운데 그로브, 앤더슨벨, 준지, 우영미 등 4개 브랜드가 타이구리 싼리툰을 중국 첫 매장 또는 주요 베이징 거점으로 선택했다. 마뗑킴도 올해 하반기 베이징 구오마오백화점에 중국 첫 매장을 낼 예정이다.
그로브는 지난해 9월 타이구리 싼리툰에 중국 1호점을 열고 현재 중국 매장을 25개까지 확대했다. 앤더슨벨은 올해 4월 같은 상권에서 중국 첫 매장을 열었으며 현재 2개를 운영하고 있다. 우영미도 지난해 10월 이곳에 진입했다. 준지는 7월 쓰촨성 청두 타이구리에 1호점을 내고 연이어 이달 타이구리 싼리툰에 베이징 매장을 열었다. 최근 K패션의 베이징 진출을 상징하는 상권이 사실상 타이구리 싼리툰으로 굳어지는 모습이다.
타이구리 싼리툰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유동인구 때문만은 아니다. 베이징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상업지역인 싼리툰에 위치해 글로벌 럭셔리와 패션 브랜드, 중국 디자이너 브랜드가 집적돼 있고 젊은 고소득층과 패션 고관여 소비자를 동시에 흡수할 수 있다. 대사관과 글로벌 기업이 밀집한 지역적 특성도 중국 내수시장에서 국제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운영사 스와이어 프로퍼티스(Swire Properties)는 타이구리 싼리툰을 지속적으로 재편하면서 글로벌 럭셔리와 플래그십 매장을 강화해왔다. 최근에는 베이징 최초 매장과 독점 매장,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브랜드 오픈 이벤트 등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베이징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라는 상권의 성격도 강화되고 있다.
K패션 입장에서는 타이구리 입점 자체가 중국 소비자에게 브랜드의 입지를 설명하는 장치가 된다. 중국에 처음 들어가는 브랜드가 어느 유통채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현지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가격대와 이미지, 경쟁 브랜드군까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앤더슨벨처럼 중국 첫 매장을 타이구리 싼리툰에 내는 것은 단순한 매출 확보보다 ‘중국에서 어느 체급의 브랜드로 출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성격이 강하다. 준지 역시 중국 유통 파트너인 미스토홀딩스와 손잡고 청두 타이구리에 이어 베이징 타이구리 싼리툰까지 진입하며 중국 프리미엄 리테일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있다.
상하이가 거리와 콘텐츠를 활용해 브랜드를 확산시키는 시장이라면 베이징 타이구리는 글로벌 브랜드들과 같은 무대에 서면서 브랜드의 격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쇼케이스 성격이 강하다.
준지 북경 타이구리 산리툰 매장
항저우도 뜬다…IN77·MIXC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상하이와 베이징에 이어 항저우도 K패션의 중국 진출 제3거점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로라로라는 올해 7월 항저우 IN77에서 중국 사업을 시작했고 레이브는 2024년 8월 같은 IN77에 첫 매장을 냈다. 레스트앤레크레이션은 올해 4월 항저우 MIXC에서 출발했다.
항저우의 특징은 1호점 이후 점포 확대 속도다. 레스트앤레크레이션은 지난 4월 항저우에서 중국 첫 매장을 연 뒤 현재 30개로 늘어 조사 대상 가운데 가장 많은 중국 매장을 확보했다. 레이브 역시 IN77에서 시작해 현재 15개까지 확대했다.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브랜드의 상징성과 이미지를 먼저 확보하는 방식과 달리 항저우에서는 검증된 대형 상업시설을 기반으로 시장 반응을 확인한 뒤 다점포로 전환하는 흐름이 두드러진다.
항저우는 중국 전자상거래 산업의 중심지라는 도시 특성도 갖고 있다. 온라인 소비와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소비층을 확보하고 있으면서 상하이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에서 중국 사업의 시장성을 검증하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K패션 입장에서는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고 전국 확장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는 시장인 셈이다.
마뗑킴 북경 구오마오 백화점 오픈예정 매장
1호점 이후 30개까지…‘거점 하나’에서 다점포로
중국 1호점의 위치만큼 눈에 띄는 것은 첫 매장 이후의 확장 속도다. 그로브는 베이징 타이구리 싼리툰에서 시작해 25개, 락피쉬웨더웨어는 상하이 펑성리에서 출발해 25개까지 확대했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는 지난해 7월 상하이 신천지에 1호점을 낸 뒤 현재 11개를 운영 중이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4개, 아더에러는 3개, 앤더슨벨과 무신사 스토어는 각각 2개다. 로라로라·시눈·준지·우영미는 각각 1개를 운영하고 있다. 신규 진출도 상하이·베이징에 집중된다. 렉토는 올해 하반기 상하이 Reel백화점, 마뗑킴은 베이징 구오마오백화점, 마르디 메크르디는 상하이 안푸루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점포 수만으로 중국 사업의 성패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레스트앤레크레이션·그로브·락피쉬웨더웨어처럼 1호점을 교두보로 빠르게 다점포화하는 브랜드가 있는 반면, 앤더슨벨·준지·우영미처럼 핵심 상권의 거점을 통해 브랜드 포지셔닝을 먼저 구축하는 전략도 두드러진다.
‘점포 수’보다 ‘첫 상권’이 중요
조사 대상 17개 브랜드 가운데 16개가 상하이·베이징·항저우 세 도시에 중국 1호점을 집중시킨 것은 K패션의 중국 진출 전략이 특정 도시를 넘어 ‘상권 선택’의 단계로 들어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국 소비자를 만나는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 현지 대리상과 백화점을 통해 유통망부터 확보했다면 최근에는 샤오홍수와 더우인에서 콘텐츠와 후기로 브랜드 인지도를 만든 뒤 오프라인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구조가 강해졌다. 이에 따라 중국 1호점은 판매 공간을 넘어 온라인에서 형성된 브랜드 이미지를 구현하고 다시 SNS 콘텐츠를 생산하는 미디어 거점으로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결국 K패션의 중국 진출에서 중요한 질문은 ‘몇 개를 낼 것인가’에서 ‘첫 매장을 어디에 낼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1호점에서 브랜드를 각인시킨 뒤 시장 반응에 따라 다점포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중국 1호점의 입지는 이제 ‘어디에서 많이 팔 것인가’를 넘어 ‘어디에서 가장 많이 보이고, 검색되고, 바이럴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에 가까워졌다. 상하이 로드숍과 베이징 타이구리에 K패션이 동시에 몰리고, 항저우가 빠른 다점포 확장의 출발점으로 부상하는 이유다.
Tag#K패션#중국진출#상하이 로드숍 벨트#베이징 타이구리
출처 : 한국섬유신문(http://www.k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