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댑티브 의류가 초고령사회 패션의 새로운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시장이 장애인이나 환자들을 위한 옷이라는 좁은 범주에 머물렀지만, 최근 AI 기반 3D 바디스캐닝, 디지털 패턴, 가상 피팅, 스마트 텍스타일, 리폼 추천 기술이 결합되며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AI는 신체보조부터 이동성, 간병 환경까지 반영한 어댑티브 핵심 기술로 부상할 전망이다.
초고령화에 따라 의류 설계의 기준을 바뀌고 있다. 사진=AI생성이미지(ChatGPT)늙어가는 세계, 늘어나는 어
댑티브 의류 수요
어댑티브 의류는 ‘신체장애나 불편함으로 기성복 착용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옷’이다. 최근 인구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어댑티브 의류 시장도 확장하는 추세다. 지난해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3%다. 통계청은 이 비중이 2036년 30%, 2050년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 등록장애인 현황 통계에서는 등록장애인이 263만 1356명으로 전체 인구의 5.1%였고, 이 가운데 65세 이상 장애인 비율은 55.3%였다. 한국에서 장애와 고령은 점점 분리된 시장이 아니라 겹치는 소비 조건이 되고 있다.
글로벌 수요 기반도 넓다. 세계보건기구는 현재 전 세계 25억 명이 하나 이상의 보조제품을 필요로 하며, 고령화와 비감염성 질환 증가로 2050년에는 보조기술 수요자가 35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의류는 휠체어, 보청기, 보행기처럼 전통적 보조기기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착탈 보조, 이동 편의, 의료 접근성, 감각 안정성 측면에서 보조기술과 인접한 생활 제품으로 볼 수 있다.
시장 규모 전망은 조사기관별 격차가 크다. 코히런트 마켓 인사이트는 글로벌 어댑티브 의류 시장이 2026년 200억 5000만 달러에서 2033년 352억 7000만 달러로 성장하고, 연평균 성장률이 8.4%라고 제시했다. 포츈 비즈니스 인사이트는 2026년 189억 3000만 달러에서 2034년 303억 1000만 달러로 성장하고, 연평균 성장률은 6.06%라고 전망했다. 펄지스턴스 마켓 리서치는 2026년 41억 달러에서 2033년 65억 달러로 성장한다고 봤다. 반면 비즈니스 리서치 인사이트는 2026년 3억 달러, 2035년 3억 7000만 달러로 훨씬 작은 규모를 제시했다.
이런 차이는 시장 정의가 아직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일부 기관은 고령자 의류, 감각 친화 의류, 의료·케어 접근 의류, 온라인 유통 제품까지 넓게 포함하는 반면, 일부 기관은 장애인 대상 특수 의류 또는 협소한 제품군만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어댑티브 의류 시장은 몇조 원 규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고령화와 포용 패션 수요를 배경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임은 분명하다.
AI 기반 3D 바디스캐닝은 개인 맞춤형 의류 설계를 가능케한다. 사진=게티이미지
3D 바디스캐닝·디지털 패턴부터 가상 피팅·리폼까지
AI와 어댑티브 의류의 결합은 현재 여러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신체 데이터 기반 설계가 있다. AI 기반 3D 바디스캐닝은 신체 치수, 자세, 체형 비대칭, 보조기 착용 조건을 디지털 데이터로 바꾸는 기술이다. 일반 패션에서는 사이즈 추천과 맞춤복에 활용되고 있지만, 어댑티브 의류에서는 휠체어 사용자, 고령자, 수술 회복자, 장애인 소비자의 앉은 자세와 착용 조건을 반영하는 설계 기반이 될 수 있다.
디지털 패턴과 가상 피팅도 발전하고 있다. CLO 3D 같은 3D 의상 설계 도구는 실제 샘플 제작 전 착용성과 패턴 구조를 검토할 수 있게 한다. 최근 연구에서는 네텔로(Netello) 3D 바디스캐닝과 CLO 3D AI 기반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다운증후군 여성의 신체 비율, 감각 민감성, 이동성 제약을 반영한 어댑티브 의류 설계를 시도했다. 이 연구는 전면 지퍼, 넓은 목둘레, 플레어 팬츠, 벨 슬리브, 무라벨, 부드러운 코튼 저지 등을 적응 요소로 제시했다. 연구 내 비용표에서는 AI 기반 어댑티브 의류 4400루피가 제시됐으며, 이는 전통 의류 1500루피와 약 2.93배 차이다.
리폼 상담과 기능 추천 역시 AI 영역이다. 국내에서는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서울시서남보조기기센터가 지난 1월 어댑티브 패션 AI 챗봇 ‘핏미’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챗봇은 2019년부터 유니클로 후원으로 진행된 장애인의류리폼지원 캠페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에게 적합한 리폼 방법을 쉽게 찾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국내에서 확인되는 가장 구체적인 어댑티브 의류와 AI의 결합 사례다. AI가 새 옷을 자동 설계해 판매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축적된 리폼 데이터를 기능 상담과 맞춤 제안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있다.
AI·모션 알고리즘·로보틱스가 결합한 나이키의 동력 신발 시스템 ‘프로젝트 앰플리파이’. 사진=나이키
전자섬유 입고 로보틱스 신는 시대가 온다
스마트 텍스타일과 전자섬유, 로보틱스는 어댑티브 패션의 다음 기술 축으로 거론된다. 최근 연구는 전자섬유가 생체 신호 모니터링, 체온 조절, 이동 지원, 커뮤니케이션 보조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론적으로는 고령자의 낙상 위험, 체온 변화, 심박, 호흡, 관절 움직임, 자세 변화를 의류가 감지하고 AI가 이를 분석하는 방향이 가능하다.
현재 스포츠용 심박 측정 의류나 의료용 모니터링 웨어러블은 주로 생체신호 측정과 건강관리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여기에 착용 편의성, 간병 동선, 세탁 내구성, 피부 자극 저감, 의료기기 접근성, 개인정보 보호 체계가 결합되면 고령자·장애인용 어댑티브 의류로 확장될 수 있다. 특히 체온, 심박, 호흡, 자세, 낙상 위험, 압박 부위 등을 감지하는 스마트 텍스타일은 요양시설과 재택 돌봄 환경에서 의류를 건강·돌봄 데이터를 연결하는 생활 인프라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
한편 나이키가 데피(Dephy)와 협력해 2025년 공개한 프로젝트 앰플리파이(Project Amplify)는 웨어러블 로보틱스 신발의 주목할만한 사례다. 나이키는 이 제품을 일상적 걷기와 달리기를 돕는 세계 최초의 동력 신발 시스템으로 설명했다. 나이키 스포츠 리서치 랩의 모션 알고리즘이 적용됐으며, 400명 이상의 테스트 참여자와 240만 보 이상의 테스트를 완료했다. 아직 상업화 단계는 아니지만 몇 년 내 일반 소비자용 출시도 예정된 상황이다. 이는 초고령사회형 패션의 기술 경계가 의류를 넘어 이동 보조 장치와 로보틱스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초고령사회가 요구하는 기능형 패션 인프라
성장 가능성만큼 리스크도 적지 않다. 먼저 시장 규모 추정이 불안정하다. 어댑티브 의류 시장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아 조사기관별 2026년 시장 전망이 3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 이상까지 벌어진다. 주요 브랜드의 실적 검증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어댑티브 라인별 매출이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상업적 성공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또한 AI 활용은 신체 치수, 장애 유형, 의료기기 착용 여부, 거동 상태, 간병 상황 같은 민감 정보와 연결될 수 있다. 데이터 수집 동의, 보관, 익명화, 차별적 가격 책정 방지, 의료적 표현 책임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당사자 참여 없는 기술 중심 설계는 실패 가능성이 높다. 어댑티브 의류는 기능만 갖춘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표준 체형을 전제로 하는 대량생산 방식만으로는 고령자·장애인·회복기 환자의 세분화된 착용 조건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고, 실제 착용자, 보호자, 작업치료사, 간병인, 의료진의 사용 경험이 설계에 반영돼야 한다.
AI 기반 3D 바디스캐닝과 디지털 패턴, 가상 피팅, 리폼 추천 기술이 고도화되면 어댑티브 의류는 소수 특수복이 아니라 개인별 착용 조건에 맞춘 기능형 패션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신체 치수와 자세, 보조기기 사용 여부, 탈착 동작, 간병 환경을 데이터화하고 이를 AI 기술과 결합해 패턴·소재·여밈·봉제 사양으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국내 시장, AI·디지털 기술 결합 가능성 커진다
국내 어댑티브 의류 시장은 아직 대형 패션기업의 상업 라인보다 리폼 지원, 보조기기 서비스, 연구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와 유니클로의 장애인의류리폼지원 사업, 서울시서남보조기기센터의 AI 챗봇 핏미, 장애인을 위한 의류 수선 디자인 유형화 연구가 대표적이다.
국내 연구는 시중 수선 서비스를 분석해 수선 위치, 여밈 도구, 사이즈·비율 조정 등 주요 유형을 정리하고, 기성복과 기존 어댑티브 의류가 중증 장애인의 수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선 서비스가 중요한 의복 제공 방법이 되고 있다.
AI 어댑티브 의류라는 흐름은 국내 패션업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장애인의 고령화도 진행되고 있지만, 패션기업의 대응은 아직 ‘편한 옷’이나 ‘큰 사이즈’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실제 시장에서 요구되는 것은 허리 밴드가 편한 바지만이 아니다. 앉은 자세에서 들뜨지 않는 등판, 휠체어 착석 시 당기지 않는 밑위, 한 손으로 여밀 수 있는 지퍼, 간병인이 갈아입히기 쉬운 오픈 구조, 도뇨관이나 장루 접근부, 라벨과 봉제선으로 인한 피부 자극 저감, 요양시설 세탁 내구성까지 포함한 설계 체계다.
국내 패션테크 연구에서는 3D 바디 스캔 데이터, 3차원 의류 모델, 메쉬 절단을 활용한 패턴 디자인, 피트성 의류의 파라메트릭 패턴 설계 등이 연구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패션테크 연구 목록에는 ‘3차원 의류 모델의 메쉬 절단을 이용한 패턴 디자인’, ‘보행 보조 웨어러블 로봇 설계를 위한 하반신 형태 및 동적 변형 분석’ 등이 포함돼 있다. 이는 어댑티브 의류와 직접 연결된 상업 사례는 아니지만, 휠체어 착석, 보행 보조기 착용, 하반신 변형, 앉은 자세 패턴 설계 같은 초고령사회형 의류 개발에 활용될 수 있는 기반 기술이다.
디지털 의상 설계 도구의 확산도 국내 시장의 기술 결합 가능성을 높인다. 지난해 CLO 3D 기반 디지털 패션 연구 동향 분석 논문은 CLO 3D를 2D 패턴 설계를 기반으로 의류 외형, 봉제, 착용감을 3D 환경에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디지털 의상 설계 도구로 설명한다. 어댑티브 의류에 적용하면 실제 샘플을 반복 제작하기 전 오픈백 구조, 사이드 지퍼 위치, 앉은 자세에서의 당김, 휠체어 사용자의 등판 여유, 보조기기 착용 시 간섭 여부를 가상 환경에서 검토할 수 있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은 PIS 2025에서 실물 섬유원단 제조 공정을 가상으로 구현해 실제와 같은 원단을 설계하고 의류 형태로 구현할 수 있는 AI·디지털 서비스를 공개했다. 이는 어댑티브 의류 전용 기술은 아니지만, 피부 자극 저감, 세탁 내구성, 신축성, 압박감, 통기성 같은 소재 특성을 디지털 환경에서 검토하는 방향으로 연결될 수 있다. 전자섬유 기술은 전도성 원사, 텍스타일 센서, 의류 기반 웨어러블 디바이스 개발과 관련된 핵심 기술로 연구되고 있으며, 향후 고령자의 체온, 심박, 자세, 낙상 위험, 압박 부위 등을 감지하는 돌봄형 의류와 결합될 가능성이 있다.
AI 어댑티브 패션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이고, AI가 내장된 어댑티브 의류의 대량 상업화도 확인된 범위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3D 바디스캐닝, 디지털 패턴, 가상 피팅, 리폼 추천, 스마트 텍스타일이 결합되면 어댑티브 의류는 장애인 전용복이나 실버복을 넘어 생활 인프라형 패션으로 발전할 수 있다. 국내 패션기업의 과제는 이 흐름을 복지나 틈새시장으로만 보지 않고, 고령화가 바꾸는 착용 조건을 데이터와 제품 설계로 전환하는 산업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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