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호선 INKE 글로벌 회장.
5월말, 몽골 울란바타르는 역동적이었다. 유목의 나라라는 이미지와 달리 도시 곳곳에는 고층빌딩 공사가 이어졌고, 사람들의 얼굴도 생기가 넘쳤다. 그 속에서 한국 브랜드 간판과 편의점, K-푸드 매장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5월28일 울란바타르 시내 중심에 있는 노보텔에서 열린 ‘2026 세계한인벤처네트워크(INKE) 글로벌 비즈니스 밋업’ 행사장에서도 그 변화의 열기는 그대로 느껴졌다.
한국 벤처기업 관계자와 INKE 소속 바이어들이 분주하게 명함을 교환했고, B2B 비즈니스 미팅장은 해외진출기회를 잡으려는 열망으로 분위기가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사람이 있었다. 박호선(65) INKE 글로벌 회장이다.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현장을 누비는 빠른 걸음,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람들과의 인사. 박 회장은 ‘회의실형 리더’라기보다는 현장에서 움직이는 기업인에 가까웠다.
“몽골은 늘 가능성이 큰 나라였습니다. 다만 그 가능성을 실제 연결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뿐입니다.”
잠시 짬을 내 기자와 마주한 박 회장은 인터뷰 첫마디에서부터 자신은 그 ‘가능성’을 현실화했다고 에둘러 말했다.
몽골 울란바타르 시가지 모습. 맑은 하늘만큼이나 몽골 시장은 아직도 진출 전망이 밝다.
박 회장이 몽골 땅을 처음 밟은 것은 1998년. IMF 외환위기로 한국경제 전체가 흔들리던 시기였다. 많은 기업인이 국내 시장에서 버티기에 급급했지만, 그는 오히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몽골로 향했다.
당시 울란바타르는 지금처럼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시가 아니었다. 겨울이면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혹한과 부족한 인프라 속에서 그는 ‘가능성’을 먼저 봤다.
“자원이 많고, 성장 잠재력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한국과 정서적으로 가까운 나라라는 점이 크게 보였어요.”
그는 몽골 현지에서 사업 기반을 구축하며 오랜 시간 활동해왔다. 특히 엘리베이터 기업 ‘시그마 몽골리아’(SIGMA Mongolia)를 운영하며 성공한 한상(韓商)으로 우뚝 섰다.
초창기 몽골 사업 환경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혹독한 겨울과 급격한 경제 변동, 예측하기 어려운 제도 변화까지 해외 기업인에게는 버거운 조건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현지인들과 관계를 구축하고, 한국 기업들의 몽골 진출을 돕는 역할까지 맡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INKE 몽골지부에서 활동에 참여했던 그는 “몽골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시장”이라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강조했다. 그 말은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
박 회장은 사업가이면서 동시에 몽골 한인사회의 대표적 리더로도 활동해왔다. 몽골한인회 회장을 맡아 동포사회를 이끌었고, 재외동포 네트워크 강화와 한·몽골 교류 확대에 힘써왔다.
행사 기간에 박 회장은 기자에게 대암 이태준(1883~1921년) 선생에 대한 설명을 상당시간 했다.
“처음 몽골에 왔을 때 이태준 선생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100년 전 이곳에서 한국인이 몽골인들을 치료하며 독립운동까지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요.”
이태준은 일제강점기 몽골에서 의료 활동을 펼치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인물로, 현지에서는 지금도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린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의 존재는 한국 사회에서 크게 알려지지 못했다.
“해외에서 사업을 한다는 건 돈만 버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나라와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남겨야 할 역사까지 함께 책임지는 일입니다.”
박 회장은 이후 몽골 한인사회와 함께 이태준 선생 기념사업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기념공원 조성과 추모행사, 한·몽골 역사 교류사업, 이태준 장학금 조성 및 지원사업 등을 펼치며 한국 독립운동사의 흔적을 몽골 현지에 알리는 데 힘을 보탰다. 실제로 몽골 현지에서는 이태준 선생을 기억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박 회장은 “몽골 사람들이 먼저 이태준 선생 이야기를 꺼낼 때가 많다”며 “그럴 때마다 한국인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동포 사회에서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뛰어가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그는 코로나19 시기 동포사회 네트워크 유지와 안전 대응에도 적극적으로 나섰고, 몽골 내 한국인 사회의 연결망을 강화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올해 박 회장은 INKE ‘해외 총의장’에 선출됐다. 27개국 44개 지부를 둔 INKE의 수장이된 그는 임기내 100개 지부까지 조직을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INKE는 전 세계 한인 벤처기업인과 투자자, 전문가들을 연결하는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다. 해외 진출을 원하는 한국 벤처기업들에게는 중요한 플랫폼으로 평가받는다.
해외 총의장을 ‘글로벌 회장’으로 전환시킨 그는 가장 먼저 ‘변화’를 강조했다.
“이제는 단순한 친목 행사로는 안 됩니다. 실제 계약과 수출 성과를 만드는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 몽골 행사 역시 그런 방향성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행사장에는 소비재·뷰티·AI·신재생 에너지 분야 한국 기업들이 참가했고, 현지 바이어들과 일대일 상담을 진행했다.
벤처기업협회는 이번 행사를 통해 몽골을 중앙아시아 진출 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박호선 글로벌 회장은 5월28일 울란바타르에서 '2026 INKE 스프링' 행사를 주최했다. 사진은 10개국 20여명의 참가자들이 기념촬영하는 장면.
박 회장은 특히 “몽골은 아직 늦지 않은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미국과 동남아에 집중돼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중앙아시아와 자원·에너지 시장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훨씬 중요해질 겁니다.”
그는 단순한 교류를 넘어 실제 사업 연결이 가능한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법률·세무·국제사업 전문가 자문단 운영 계획도 그 연장선이다.
“젊은 세대가 이어받아야 합니다.”
박 회장은 인터뷰 내내 ‘세대교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재외동포 경제단체의 미래는 결국 젊은 리더 육성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1세대가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다음 세대가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뛰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차세대 기업인 참여 확대와 글로벌 청년 네트워크 강화도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행사장에서도 젊은 스타트업 대표들과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누군가는 그를 “몽골 비즈니스 1세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여전히 “현장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몽골 울란바타르 노보텔에서 열린 '2026 INKE 스프링' 행사중 일대일 비즈니스 미팅 장면.
해질 무렵의 울란바타르는 강한 바람과 함께 급격히 기온이 떨어졌다. 행사를 마친 뒤에도 박 회장은 참가 기업인들과 이야기를 이어갔다. 누군가는 몽골 시장을 물었고, 누군가는 중앙아시아 진출 전략을 질문했다.
“몽골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여기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까지 연결됩니다.”
그의 답변에서는 이미 몽골 너머로 향하고 있는 도전정신이 보이는 듯 했다. 그 도전은 이제 세계 각국의 재외동포 경제인을 연결하며 대한민국 벤처기업의 새로운 해외 진출 지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