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8월23일 한일정상회담을 마친뒤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공동 언론 발표 뒤 악수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일본 총리를 비롯한 양국 관계자들이 함께 한 한일정상회담 모습.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일본 도쿄에서 이시바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당초 두 정상 외에 양측에서 4명씩 더 배석하는 소인수 회담을 5분 간 갖기로 했다. 그러나 소인수 회담을 한 시간 넘게 갖는 등 우호적인 회담을 이어 갔다.
그 결과 17년 만에 한일정상회담 공동문서 발표에 합의하는 성과를 냈다. 공동발표에서 두 정상은 양국이 경제, 안보,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맺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각, 미 국무부는 별도 보도자료를 통해 안보분담금 대폭 증액과 주한미국의 인태전략 확장 등 사실상 대한 ‘청구서’를 내밀어 주목을 끌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양자외교의 첫 방문국으로 이례적으로 일본을 택했다. 이날 도쿄에 도착한 이 대통령이 차량에서 내리자 관저 앞에서 기다리던 이시바 일본 총리가 다가가 악수를 건네고, 활짝 웃으며 회담장으로 함께 걸어들어갔다.
회담은 핵심 인사들만 참석한 비공개 소인수 회담에 이어 확대 회담 순서로 진행됐다. 5분으로 계획되었던 소인수 회담은 오후 4시 55분 시작, 예상을 훌쩍 넘겨 1시간가량 이어졌다. 그 후 열린 확대회담에서 이시바 총리는 “평화와 안정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면서 “일본과 한국의 관계 강화, 발전은 양국관계뿐 아니라 지역 전체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 대통령이 양자 회담국으로 일본을 먼저 택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은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과 같은 관계”라고 친밀함을 드러내며 한일 간 협력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다만 “불필요한 갈등도 발생한다”며,“ 불필요한 건 조정하고, 필요한 건 협력하자”고 강조했다. 이는 한일 과거사 문제 등 양국 간 불편한 의제를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또 “서로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고 또 협력할 분야도 참으로 많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가깝다 보니 불필요한 갈등도 가끔씩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두 정상은 회담 후 “경제·사회·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했다”며 정상회담 공동 결과를 17년 만에 처음으로 문서로 발표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특히 저출산과 고령화, 수도권 집중과 농업, 재난 안전 등 양국이 공통으로 직면한 과제를 언급했다. 이에 대해 “공동 대응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기 위해 당국 간 협의체를 출범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안보 분야에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구축 의지를 재확인했다. “대북 정책에서 긴밀한 공조를 지속하기로 했다”면서 “한일 관계 발전이 한미일 협력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경제 분야의 새로운 지평으로 수소 암모니아, AI 등에 관한 협력을 더욱 추진해 나가는 데에 관해서도 의견의 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그는 안보 문제에 대해서 “‘힘 또는 외압’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을 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면서 “특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일본과 한국, 그리고 일·한·미 삼국이 긴밀히 공조해 대응해 나가기로 했음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고, 셔틀 외교도 복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회담에 앞서 이 대통령은 재일 동포들도 만났다. 특히 ‘재일동포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들에게 국가에 의한 폭력을 사과했고,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언급하며 과거사 문제도 에둘러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간첩조작 사건으로 피해를 본 동포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며, “동포들의 애국심을 잊지 않고 꼭 기억하고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또 “최근 80년 광복절을 맞이해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을 떠올렸을 때 특히 마음이 쓰였던 분들이 바로 재일 동포였다”고 돌이켰다.
이 대통령은 “2·8 독립 선언이 발표됐던 YMCA 강당,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난 히비야 공원, 모두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라며, “도쿄의 중심지 곳곳에 동포 여러분의 치열했던 삶의 흔적이 오롯이 녹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먹먹하다”고 애석해했다.
이 대통령은 또 “양국 국민이 서로 신뢰의 마음을 나누며, 서로의 삶을 풍부하게 채워 주는 한일관계의 새로운 역사, 동포 여러분이 만들어 주신 빛나는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양국이 더욱 두터운 신뢰에 기반해서 더 큰 협력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런 가운데 25일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측이 한국에 미리 ‘값비싼 청구서’를 에고하는 메시지를 공개, 회담 성과를 낙관할 수 없게 되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정상회담 사전 조율을 위해 미국 워싱턴DC에 급파된 조현 외교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마코 루비오 미 백악관 국가안보실장 겸 국무부 장관과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
그 직후 미 국무부는 이날 부대변인 명의의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측을 겨냥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내보냈다.
즉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억지력을 강화하고, 공동 부담 분담을 확대하며, 미국 제조업의 재활성화에 기여하고, 무역 관계의 공정성과 호혜성을 회복하는 미래 지향적인 의제를 중심으로 한 한미 동맹을 발전시켜 나갈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라는 내용이다.
이는 비록 짤막한 메시지이긴 하지만, 미국 측이 한국 측에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 안보 청구서와 추가적인 관세 문제 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장관들끼 사전 조율이 여의치 않을 경우 양국 정상회담에서 방위비 분담금 확대와 한미 간 무역 적자 해소 방안 등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다.
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억지력 확장’, 즉 한미 동맹의 억지력을 인도·태평양 등 한반도 외 지역으로 확대하는 ‘동맹의 현대화’도 언급해 눈길을 끈다. 특히 주한미군에 대한 ‘전략적 유연성’을 언급, 한반도 밖으로 활동 범위를 확대할 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선 주한미군 감축도 시도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그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시험대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