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국회
국내 의료기기 유통시장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수년간 의료산업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온 간납 구조와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국회 및 정부 차원의 제도적 개선이 본격화되고 있다. 의료기기 시장 규모가 10조 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산업의 건전한 생태계 구축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유통 구조 대수술이 예고된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는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의료기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했다. 대표 발의자인 김 의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을 지낸 의료 정책 전문가로 꼽힌다.
이번 법안에는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제한 규정 신설, 표준거래계약서 작성·교부 의무화, 대금결제 기한을 6개월 이내로 명시, 3년마다 의료기기 유통 실태조사 및 공표 의무화, 의료기기 공급내역 보고 대상을 전 품목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개정안은 병원과 간납업체의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계약서 미작성, 대금 결제 지연, 과도한 할인 요구 등 구조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간납업체는 의료기관의 구매대행을 사실상 독점하며 거래 중간 단계에서 과도한 이윤을 취하고 재고 책임을 제조·유통사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기업들에 불공정 행위를 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표준계약서가 있음에도 현장에서는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으며 의료기기 기업들이 받지 못한 대금은 수년째 누적되고 있다.
일부 간납업체는 병원의 특수 관계인과 지분을 공유하면서 불공정 구조를 고착화시킨 사례도 드러났다. 업계에서는 매출이 반토막이 나도 대금을 어음으로 받는 상황이라는 하소연까지 나왔다.
정부 역시 의료기기와 의약품 유통시장 전반에 대한 개혁에 나서고 있다. 국정과제로 ‘의료기기 산업 혁신성 제고 및 유통구조 선진화’를 명시한 만큼 보건복지부는 연내에 실태조사 법제화, 불공정거래 규제, 표준거래계약서 의무화, 대금지급 기한 단축 등을 담은 개정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개혁은 의료기기뿐만 아니라 의약품 간납 구조와 리베이트 관행까지 함께 겨냥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수십억 원 규모 의약품 리베이트 사건처럼 유령법인을 통한 불법 거래와 입찰 방해 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만큼 정부는 의료·제약 전반의 유통 투명성 제고를 목표로 삼고 있다.
업계는 이번 움직임에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간납 독점 구조가 다채널 공급망으로 전환되면 경쟁이 활발해져 장기적으로는 의료기기 업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한편 단기적으로는 중소 유통업체와 제조사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크다.
의약품 분야에서도 의원급까지 확산되는 간납 구조가 약국의 조제 선택권을 제한하고 환자 서비스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의료기기와 의약품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제도 개선 없이는 유통 질서를 바로잡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공언이 수십 차례 반복됐지만 현장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매년 단골 의제로 다뤄지고 설문조사와 연구보고서가 쏟아졌음에도 대책은 번번이 공무원 책상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의료기기 업계 한 관계자는 "의료기기 산업은 4차 산업혁명과 신성장 동력이라는 구호 속에서도 간납 구조라는 병폐로 발목을 잡혀왔다"며 "이번 국회 토론회와 정부 개정안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현장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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