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용위 재외기자
세기의 미남 배우’로 사랑받았던 알랭 들롱이 향년 88세로 우리 곁을 떠난 지 어언 반년이 되간다.
그가 출연했던 수많은 영화 가운데 ‘태양은 가득히’가 떠오른다. 1960년대 프랑스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그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영화를 필자는 중학생 시절에 사복차림으로 겁없이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조각 같은 외모와 서늘한 눈빛을 가진 리플리(주인공의 이름)가 친구를 죽이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그 퇴폐적인 분위기는 당시 성인 근처에도 다다르지 못했던 내게 하나의 신드롬이 되고 말았다. 테마 음악마저 10대의 나를 지배했던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 부잣집 친구를 죽인 뒤 그의 행세를 하는 톰 리플리역을 알랭 드롱은 부드러운 얼굴 속에 소시오패스적 욕망을 숨긴 이중적인 모습을 너무도 기묘하게 연기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열번 정도는 더 봤던 영화는 사춘기를 넘나들었던 그 시절에 강렬한 인상으로 나를 뒤흔든 인생 최고의 명작으로 지금까지도 손에 꼽고 있다.
본질 잃은 좌파와 우파의 정의
격동기의 대학시절을 거치며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필자는 출중한 외모 속에 가려진 비열한 욕망이나 잔인한 본성을 숨긴 이중적인 이미지의 인물들과 자주 만나게 되었다. 어쩌면 70~80년대의 성장통을 겪었던 당시의 (우리) 청년들에게 공동으로 찾아온 숙명과도 같은 인사치레였던것 같다.
진실을 가장한 거짓 심성과 이중 잣대로 치부되는 궤변 논리는 삭막한 세상에서 여과없이 계속 변주되어갔고, 결국 동시대를 혼란스럽게 살아온 푸른 청춘들은 저마다의 전혀 다른 방식의 논리에 젖어 각기 다른 가치관의 두 갈레 길로 흩어져갔다.
말 돌릴 것도 없이 두 갈레 길이란 소위 진보와 보수를 일컫는 것이다. 제각각 의미심장했고 분명한 색갈이 있었던 두 단어가 좌파, 우파로 통용화되가면서 그 본래의 형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도 우린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돼버렸다. 좌파 또는 우파는 그 본질이 훼손된 체 한 사람의 실체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대명사가 되었고, 어떤 연유에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주 한인 커뮤니티 집단에서 특히 도드라진 현상이 되고 말았다.
"이민생활중에 한인사회에 끼어들어 열심히 봉사하다 보니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좌파니 우파니 하는 명찰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는 말은 이제 동포사회의 일각에서 네편과 내편을 가르는 기준선이 되고 말았다. 미주 한인사회가 유난히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지역별 한인공인단체가 타국 동포사회에서는 발견하기 힘들게 양분되어 있는 현실이 이러한 지적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결국 문제는 '좌우의 날개로 나는 새'가 아닌, 한쪽 날개로만 날기를 원하는 균형없는 몸짓을 좌와 우가 죽기살기로 고집을 부리고 있는 한인 커뮤니티의 현실을 우린 어쩔 수없이 바라보며 살고 있다는 점이다.
한달 앞으로 다가온 고국의 대선을 앞두고 양분된 조직의 편가르기 논쟁이 극에 달하는 분위기다. 물론 한인사회의 일각이라는 전제하이기는 해도 그 목소리가 반대편 상대를 호도하는 차원을 넘어 거의 '때려눕히기 위한 수준'이어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상대가 상대를 때리는 편가르기식 해법에는 늘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무기가 있다. 그건 바로 그럴듯해 보이는 '거짓말'이 가장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다. 거짓말은 극단주위자들이 퍼날르는 매체에서 주로 건져낸 것들이고, 한편으론 달콤해보이기도 한 사소한 거짓말들이 상대를 무너뜨리는 절호의 찬스가 되자 그 거짓말이 뻔한 거짓말인 것을 알법도 한 사람들마저 좌우의 소속감에 취해 해서는 안되는 거짓말까지 동원해내는, 일말의 양심마저 저버리는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 점이다.
이리 되기까지 그 수많은 이유 중에는 고국 정치인들의 정치(政治)를 왜곡하며 사는 모순됨에 있다는 사실도 우린 또 모르지 않는다. 우린 지난한 세월동안에 역사를 쉽게 왜곡하고 의인을 죄인으로 변질시키는 고국 정치인들의 일탈 행위를 무수히 지켜봐 왔고, 멀리 갈것도 없이 전 세계로 생중계 된 헌법재판소 재판과정에서 30분 뒤면 탄로날 거짓 증언들이 뻔뻔스럽게 자행되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이런 장면들은 ‘친구를 죽이고도 죽여야만 했다는 당위성을 간직하며 한가롭게 해변에서 내리쬐는 볕에 포만감을 느끼는 리플리’와 오버랩 됐고, 그 순간 필자는 세상을 지배하고 영향력을 끼치는 리더들부터가 리플리 증후군에 사로잡혀 있을 것 같은 경악스러움에 가슴을 쓸어내리기 바쁘기도 했다. 고국의 유력한 대선 후보자가 그렇고, 후보군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집단체제들이 리플리 증후군을 앓아가며 차기 대통령을 선출한들 정치풍토나 사회환경이 녹록하게 자리잡을 것 같지 않아 그게 당장 걱정인 것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미중남부 한인사회부터가, 그 커뮤니티를 쥐락펴락해왔던 인사들부터가 그렇게 공상허언증의 증후군을 신봉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허구를 사실로 확신하고, 타인들에게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주목받기를 원하며, 자기 과시욕을 높이기 위해 거짓과 망상을 해결수단으로 선택하는 몇몇 어른들의 거짓말, 거짓행동, 거짓상황을 젊은 우리의 푸른 동포들이 행여 그대로 흉내낼까 봐 심히 우려가 돼서 하는 말이다.
출처 : 재외동포신문(https://www.dongp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