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수 민주평통 미주부의장이 14일 오후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는 모습.
9월1~4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리조트에서 열린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미주지역회의를 마친 이재수 미주부의장은 곧바로 백두산으로 향했다. 9월4~7일 난생처음 백두산에 오르고, 도문시와 북한에 경계인 변경지역과 우리민족의 독립운동 지역인 용정 등도 돌아봤다. 북녘 땅을 직접 밟을 수 없는 현실에서 중국 쪽 백두산이라도 찾아 한반도의 역사와 분단, 그리고 평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서였다.
이 부의장은 백두산에 올랐다가 7일 다시 고국을 찾았다. 미국에 정착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한국과 한반도의 미래를 자신의 삶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그를 만난 것은 14일 오후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였다.
백두산을 다녀온 직후 만난 그의 말에는 오랜 세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고민해온 사람의 경험이 묻어났다.
백두산 천지에 오른 이재수 미주부의장.[본인 제공]
“우리가 생각하는 통일은 남북이 공존하는 그때부터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이 부의장이 말하는 ‘통일’의 출발점은 거창한 통일 방안이 아니다. 먼저 서로의 현실을 인정하고 적대하지 않는 것, 그리고 평화로운 관계 속에서 공동의 이익을 찾아가며 신뢰를 쌓는 것이다.
1985년 미국으로 이민한 그는 워싱턴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문동환 목사와의 만남을 계기로 평화와 정의, 통일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했다. 1988년 워싱턴청년운동 초대 회장을 지낸 뒤 재미동포민족운동연합, 자주민주통일 미주연합, 6·15 미국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평화통일운동의 현장을 지켰다.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에서 뷰티서플라이를 운영하며 사업가로 자리 잡은 그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사회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사업과 사회운동을 함께해온 그의 미국 생활은 그렇게 40년 가까이 이어졌다.
민주평통 워싱턴협의회 간사와 회장을 거쳤고, 이제는 제22기 민주평통 미주부의장으로 미국과 캐나다, 중남미 지역 20개 협의회의 활동을 이끌고 있다.
40년 가까운 미국 생활과 평화통일운동의 경험을 거쳐 그가 지금 강조하는 것은 ‘대결’이 아니라 ‘공존’이다.
백두산에서 다시 마주한 분단의 현실
중국 쪽 백두산을 찾은 이유를 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북으로 못 가니 다른 쪽으로라도 가보자는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단순한 여행의 감흥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무대였던 만주벌판과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공간을 돌아보면서 한반도가 여전히 자유롭게 오갈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컸다고 했다.
백두산을 바라보며 그는 역사와 분단을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평화공존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남과 북이 서로의 현실을 인정하고 적대하지 않는 것이 평화공존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하는 평화공존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상대를 바꾸려하기 보다 서로 다른 체제와 현실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불필요한 간섭을 줄이면서 실용적인 이익부터 찾아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이재수 민주평통 미주부의장. [황복희 기자]
“평화공존이 통일의 출발점”
이 부의장은 오랫동안 경색된 남북관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고 실용적 이익을 중심으로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 개선과 국제사회의 협력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냐는 질문에는 “우선순위는 없다”고 답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만큼 병행해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북미관계 개선이 남북관계에도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정치권이 한반도 문제를 안보와 핵 문제 중심으로 바라본다면, 미주 한인사회는 전쟁을 끝내고 남북이 공존하는 평화의 관점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보다 시민사회에서 시작하는 평화외교
제22기 민주평통 활동에서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시민공공외교’다.
“민주평통의 시민공공외교는 시민과 더불어, 시민을 통해, 시민의 힘으로 시대적 과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아래로부터의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정치권을 상대로 한 활동만이 공공외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곳곳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이 현지 시민과 만나 한반도 평화를 이야기하고, 평화교육과 시민활동을 통해 공감대를 넓혀가는 것이 진정한 풀뿌리 외교라고 설파했다.
그는 “느리고 더디지만 이 길이 정도(正道)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내 한반도평화법안과 관련한 활동 역시 법안 통과 자체에만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미국 사회에 한반도 평화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민주평통 워싱턴협의회 자문위원들과 백두산 천지에 올라 기념촬영하는 이재수 부의장(맨 왼쪽).[본인 제공]
차세대에게 통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재미동포 2·3세에게 한반도 통일은 기성세대만큼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이들에게 민족적 정체성만을 앞세워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미주 청년 차세대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너무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들은 미국에서 받은 교육을 통해 공공의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인의 문제라는 좁은 틀을 넘어 전쟁과 평화, 인권과 공존이라는 보편적 가치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성세대가 답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직접 기획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수 민주평통 미주부의장이 미주지역회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왕길환 기자]
“미주 한인사회가 평화의 앞자리에 서야”
제22기 민주평통 임기는 2년이다. 그는 이 기간에 거대한 성과를 만들어내겠다는 욕심보다 자신의 역할이 다음 사람에게 하나의 좋은 모델로 남기를 바라고 있다.
“제가 한 일을 통해 누군가 다음 미주부의장이 오더라도 좋은 귀감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가 미주 20개 지역협의회 1903명의 자문위원에게 강조하는 것도 결국 평화와 희망이다. 재미동포는 한국과 미국 사회를 동시에 경험하는 사람들인 만큼 한반도 평화 문제를 미국 사회에 설명하고, 미국 사회의 시각을 한국사회에 전달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동포들을 ‘풀뿌리 시민공공외교관’이라고 불렀다.
인천에서 미주지역회의를 마치고 백두산에 올랐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이 부의장. 그의 발걸음은 미국과 한국, 그리고 남과 북을 오가는 듯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방향은 하나다. 대결의 시대를 넘어 공존의 시대로 가는 길이다.
출처 : 재외동포신문(https://www.dongp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