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개국 공동 '북한 IT인력 관련 주의보' 원문 일부. [외교부]
북한 정보기술(IT) 인력이 해외에서 국적과 신분을 숨긴 채 원격 근무 일자리를 수주해 외화를 벌고, 이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활용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 일본 등 11개국이 공동 대응에 나섰다.
외교부와 경찰청은 지난 7월 31일 미국·일본·영국·호주·캐나다·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뉴질랜드 관계기관과 함께 북한 IT 인력 관련 공동주의보를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북한 IT 인력의 활동 방식과 기업이 채용·계약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주요 위험 신호를 국제사회와 민간 부문에 공유하고, 북한 IT 인력의 고용을 예방하기 위해 마련됐다.
공동주의보에 따르면 북한은 허위 신분을 취득한 숙련된 IT 인력을 해외 온라인 구인·조달·서비스 계약 플랫폼 등에 투입해 일감을 수주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이 취득한 급여는 북한 내 소속 기관으로 송금되며, 북한의 불법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 자금 조달에 활용되는 것으로 참여국들은 보고 있다.
제3국 신분증·대리 면접으로 위장 취업
주의보는 북한 IT 인력이 국적과 신분을 위조해 온라인 플랫폼에 계정을 개설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제3국에 거주하는 조력자가 제공한 신분증 이미지로 계정을 만든 뒤 실제 업무는 북한 IT 인력이 수행한 사례도 확인됐다.
최근에는 온라인 계정 개설이나 채용 면접에 제3자 대리인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계약 상대방의 신뢰를 얻기 위해 대면 접촉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화상회의 과정에서는 신분증 사진과 실제 인물이 일치하지 않거나, 영상이 조작됐거나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제시됐다. 북한 IT 인력이 번역 서비스나 대규모 언어모델을 활용해 자연스러운 외국어 프로필을 작성하고 의사소통할 가능성에도 주의를 당부했다.
VPN·'노트북 농장'으로 실제 위치 숨겨
주의보는 북한 IT 인력이 북한과 중국, 러시아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등에서도 활동하고 있으며, 가상사설망(VPN), 원격 데스크톱 소프트웨어, 제3자 대리인 등을 이용해 실제 근무지를 은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 등 해외에 있는 제3자 조력자를 통해 이른바 '노트북 농장(laptop farm)'을 운영하는 사례도 소개됐다. 이는 기업이 제공한 업무용 노트북을 현지 조력자가 대신 수령한 뒤 북한 IT 인력이 원격으로 접속하도록 해 실제 위치를 숨기는 방식이다.
급여 지급 과정에서는 본인 명의 계좌 대신 제3자 계좌를 제시하거나 송금 서비스, 가상자산을 통한 지급을 요구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북한 IT 인력이 자체 개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동 거래 시스템을 이용해 외환거래 사기를 벌인 사례도 주의보에 포함됐다.
기업 내부 위협으로도 악용
공동주의보는 북한 IT 인력이 단순히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의 내부 위협으로 작용해 데이터 무단 반출, 가상자산 탈취, 민감정보 절취 활동에도 점차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AI 등을 활용해 신원을 더욱 정교하게 은폐하면서 활동 범위를 세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계좌 명의 불일치·저가 견적은 의심"
공동주의보는 온라인 플랫폼 운영 기업과 구인 기업이 확인해야 할 주요 위험 신호도 제시했다.
온라인 플랫폼은 ▲계정명·연락처·급여 수령 계좌의 빈번한 변경 ▲계정 명의자와 급여 지급 계좌 명의 불일치 ▲동일 신분증으로 여러 계정 생성 ▲위조가 의심되는 신분증 사용 ▲동일 IP 주소에서 다수 계정 접속 ▲짧은 시간 내 여러 IP 접속 ▲비정상적으로 긴 로그인 시간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구인 기업과 서비스 발주 기업은 ▲부자연스러운 프로필과 언어 사용 ▲신분증과 화상회의 참가자의 불일치 ▲화상회의 거부 ▲시장 가격보다 지나치게 낮은 견적 ▲여러 사람이 하나의 계정을 운영하는 정황 ▲가상자산을 통한 대금 지급 요구 등을 주의해야 할 위험 신호로 제시했다.
또한 공동주의보는 온라인 플랫폼 운영 기업에 대해 엄격한 신원 확인과 대면 인터뷰 도입, 의심 계정 탐지 강화, 비정상 정보 입력 시 경고 시스템 도입 등 대응 조치를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국제사회 공조 강화…재외동포 기업도 주의 필요
공동주의보는 북한 IT 인력과 계약을 체결하거나 대가를 지급하는 행위가 한국과 미국, 일본을 포함한 여러 국가의 법령에 저촉될 소지가 있으며, 이에 따라 법적 책임이나 금전적 제재가 부과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397호에 따라 회원국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자국에서 소득을 얻는 북한 노동자를 북한으로 송환해야 하며,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도 북한을 '조치를 요하는 고위험 국가'로 지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앞서 2023년 북한 IT 인력의 해외 외화벌이에 관여한 북한 기관 3곳과 개인 7명을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해외 IT 인력 송출과 가상자산 플랫폼 개발, IT 인력 양성에 관여한 기관과 해외 지부 책임자 등을 제재 대상에 포함하고, 일부 가상자산 지갑 주소도 함께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