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를 방문한 남지은 문화유산회복재단 국제협력 책임연구원(왼쪽)과 부친인 남종석 전 폴란드한인연합회장((민주평통 중동부유럽협의회장)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한국은 어떤 나라니?”
남지은 문화유산회복재단 국제협력 책임연구원은 이 질문을 어린 시절부터 수도 없이 들었다고 했다.
부친(남종석 전 폴란드한인연합회장)을 따라 세 살 때 폴란드로 건너간 그는 국제학교에서 성장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친구들은 그에게 한국을 설명해 달라고 했다. 북한과 무엇이 다른지, 한국만의 문화는 무엇인지,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지 묻곤 했다.
그러나 정작 그는 한국에서 살아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한국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를 공부했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심리학을 선택했다. 이후 국제협력을 공부하며 문화유산 연구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해외에 흩어진 한국 문화유산을 조사하고 환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7일 여의도 본지를 방문한 남 연구원은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이날 인터뷰에는 부친인 남종석 전 폴란드한인연합회장(민주평통 중동부유럽협의회장)도 동행했다.
남 연구원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폴란드에서 자란 재외동포 1.5세다. 그는 해외에서 자라면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누구보다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국제학교에서는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여러 나라 학생들과 함께 생활했는데, 친구들은 늘 한국을 물었다.
"한국은 어떤 나라냐." "북한과는 무엇이 다르냐." "한국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이냐."
남 연구원은 "한국에서만 자란 사람들은 정체성을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만, 해외에서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가장 먼저 설명해야 하는 정체성이었다"고 말했다.
이 질문은 그의 진로도 바꿨다.
처음에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서울대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이어 국가와 역사, 국제협력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연세대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협력을 전공했다.
그 과정에서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문화유산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남 연구원은 “역사를 증명하는 것이 문화유산”이라며 “문화재 반환은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함께 생각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는 고려대 국제학부 박사과정에서 재외동포와 문화유산, 외교를 연구하고 있다.
아버지 남종석이 심어준 ‘한국인’
남 연구원의 삶에는 자연히 아버지 남종석 전 회장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남 전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직전 SK네트웍스(당시 선경) 주재원으로 폴란드에 갔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이 동유럽 시장을 낯설게 바라보던 시절 그는 폴란드에 남기로 했고, 현지에서 기업을 창업한뒤 폴란드 한인연합회장과 월드옥타 부회장 등을 지냈다. 2020년 9월에는 문화유산회복재단(이사장 이상근) 폴란드지부장으로 임명돼 동유럽 지역 한국 문화유산 조사와 환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남 연구원은 “아버지는 항상 '너는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며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며 성장했다고 말했다.
남지은 연구원이 문화유산을 살펴보는 모습. [본인 제공]
문화재를 찾다 보니 재외동포가 보였다
문화유산회복재단에서 활동하면서 남 연구원은 한가지 깨달은 게 있다. 문화재를 가장 많이 찾아주는 사람은 다름아닌 해외 동포들이었다.
동유럽 박물관 조사에서도, 미국에서 문화유산을 환수하는 과정에서도 현지 한인들의 제보와 협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LA에서 열린 환수 문화유산 전시에서는 신문 공고를 보고 찾아온 동포들이 집안에 보관하던 문화유산을 기증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는 “문화재 환수에서 재외동포의 역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현지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는 동포들이 있어야 협상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화제는 자연스레 재외동포 문제로 넘어갔다.
남 연구원은 현재 재외동포 정책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재외동포 대상 모국 방문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당시 운영진 대부분이 한국어만 사용해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을 소개했다. “재외동포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정책이 만들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원사업보다 국내 청년과 재외동포가 자연스럽게 만나고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의를 듣는 것보다 함께 어울리며 서로를 이해하는 경험이 중요하다”며 그런 경험이 결국 정책에도 반영된다”고 말했다.
남 연구원은 2024년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던 이유도 문화유산과 재외동포 정책을 정책 현장에서 다루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비례대표 후보 17번을 받았고, 문화유산 분야 전문가이자 재외동포 1.5세 청년의 경험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마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문화유산회복재단에서 활동하며 국회 포럼과 입법 논의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국외 소재 문화유산의 보호·활용·환수와 관련한 법·제도가 여전히 미비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유산 관련 국회 포럼을 여야 의원들과 함께 진행해 왔다"며 "특정 정당의 제안을 받은 것이 아니라 직접 공모에 지원해 서류와 면접, 당내 절차를 거쳐 후보로 선출됐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문화유산을 대표할 사람도 필요하지만, 저에게는 재외동포를 대변할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했다”고 덧붙였다.
남 연구원은 특히 "재외동포 정책을 직접 겪어보면 우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책이 만들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문화유산과 재외동포의 목소리를 함께 정책에 반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성장한 청년 세대가 정책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 밝혔다.
부친인 남 전 회장 역시“재외동포 사회에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며 "현지 사회를 이해하는 젊은 세대가 재외동포를 대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폴란드 아시아태평양박물관에서 수장고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현지 조사하고 있는 남지은 연구원. 맞은편은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문화유산회복재단이 설립한 국내 최초의 환수 문화유산 전문 박물관. 지난해 5월 충남 아산시 음봉면 HB페이퍼 사옥에 문을 열었다. 해외에서 환수하거나 기증받은 문화유산과 고서·민속품 등 약 1000여 점을 전시하며, 환수 문화유산은 약 200여 점이 핵심 컬렉션이다.
"문화유산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
남 연구원은 문화유산을 단순한 유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화유산은 역사이면서 외교이고, 교육이며 정체성이라고 했다.
또 해외에 흩어진 문화유산을 되찾는 과정은 과거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 간 신뢰를 쌓고 미래 협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폴란드에서 성장한 재외동포 1.5세. 자신의 삶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고민했고, 그 고민은 문화유산 연구와 재외동포 정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남지은 연구원이 던진 질문은 개인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재외동포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자산으로 함께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다.
남지은 문화유산회복재단 국제협력 책임연구원. 한국에서 태어나 폴란드에서 성장한 재외동포 1.5세로 1994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