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청와대에서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를 접견하는 모습.
알파고 창시자인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서울을 다녀갔다. 약 10년만이다. 하사비스는 4월말 방한 기간동안 대통령 접견, 정부 협력 체결, 주요 기업 면담, 공개 강연과 대담까지 이어지는 일정으로 한국의 AI 정책과 산업 생태계를 전방위적으로 점검했다. 대표적으로 서울에서 열린‘Google for Korea 2026’ 행사에 참석해 기조 강연과 공개 대담을 진행하며, 인공지능(AI)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내놨다.
하사비스는 이 자리에서 “알파고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고 강조했다. 2016년 알파고 대국이 단순한 승부가 아니라, AI가 스스로 학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를 입증한 사건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AI 경쟁의 본질이 바뀌고 있으며, 그 변화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학습 방식과 산업 적용 구조에 있다고 진단했다. 하사비스가 이번 방한을 통해 던진 시사점을 토대로 AI 기술의 방향성을 정리해본다.
데이터에서 ‘학습 구조’로…AI 경쟁의 기준 변화
하사비스는 서울 강연에서 “우리는 데이터에서 배우는 시스템에서 스스로 배우는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알파고는 강화학습과 자기 대국(self-play)을 통해 전략을 발전시킨 대표적 사례다. 이는 이후 AI 기술이 인간 데이터 의존에서 벗어나 자가 학습 기반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
이 변화는 기업 경쟁 구도를 바꾸고 있다. 단순히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거나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기업은 빠르게 평준화되는 반면, 학습 구조를 설계하고 확장할 수 있는 기업만이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 기업이 보유한 산업 데이터, 현장 경험, 고객 반응, 실험 결과 등을 AI가 반복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알파고가 스스로 대국을 반복하며 전략을 고도화했듯, 기업도 AI가 시행착오를 통해 더 나은 판단을 하도록 데이터 흐름과 피드백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제조기업이라면 AI가 생산 공정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불량 원인을 추적하고 개선안을 제시한 뒤 실제 결과를 다시 학습하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는 AI를 얼마나 많이 쓰느냐보다, AI가 우리 기업 안에서 얼마나 빠르게 배우고 개선되도록 만들었느냐가 경쟁 우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의미다.
AI, 자동화를 넘어 ‘지식 창출 인프라’로
하사비스는 같은 행사에서 “AI는 단순 생산성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시스템”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산업 구조 전환을 의미한다. 제조는 공정 최적화를 넘어 설계 혁신으로, 바이오는 후보물질 탐색을 넘어 신약 개발 구조 자체로, 에너지는 운영 효율을 넘어 시스템 설계 단계로 AI가 확장되고 있다.
결국 기업 경쟁력은 AI를 도입했는지가 아니라 R&D 자체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는 해석이다. 단순히 생성형 AI를 업무에 적용하는 수준은 생산성 개선에 그칠 수 있지만, R&D 구조를 바꾸는 경우 경쟁의 양상이 달라진다.
R&D의 핵심은 문제 정의, 실험, 검증, 개선으로 이어지는 반복 과정인데, 이를 AI가 학습하고 축적하는 구조로 전환하면 속도와 범위가 동시에 확대된다. 제조업에서는 공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설계안을 도출하고 실제 생산 결과를 다시 학습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바이오 분야에서는 후보물질 탐색부터 실험 결과 반영까지 전 과정이 AI 중심으로 재구성되는 흐름이다.
이 경우 경쟁력은 단순 효율이 아니라‘학습 속도’에서 갈린다. 사람이 반복하던 실험과 판단이 AI 기반으로 자동화되면 시행착오의 축적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고, 이는 곧 기술 격차로 이어진다. 특히 데이터와 실험 결과가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구조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선도 기업과 후발 기업 간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AI는 도입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구조 기술로 작동한다. R&D를 AI 중심으로 전환한 기업은 스스로 진화하는 체계를 갖추게 되는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은 외부 플랫폼에 의존하는 구조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전략적 선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와 이세돌 사범 겸 UNIST 특임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구글 포 코리아 2026에서 바둑판에 서명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알파고 대국 이후 10년만에 다시 만났다.
AGI는 ‘사건’이 아니라 ‘속도 경쟁’
범용 인공지능(AGI)에 대해서도 그는 “점진적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특정 시점에 등장하는 기술적 이벤트가 아니라, 지금의 AI 기술이 산업 현장에서 반복 적용되면서 점진적으로 고도화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더 좋은 AI가 나오면 그때 도입하겠다”는 방식은 위험할 수 있다. AI 역량은 실제 업무와 생산 현장에 적용하면서 데이터가 쌓이고, 실패 사례가 축적되고, 이를 다시 모델과 프로세스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커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조기업이 AI를 불량 탐지에 일부 적용하면, 처음에는 정확도가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생산 조건, 불량 유형, 설비 상태, 작업 환경 데이터가 계속 쌓이면 AI는 더 정교하게 원인을 찾고 개선안을 제시할 수 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단순 탐지에서 공정 최적화, 나아가 설계 개선으로 확장된다.
바이오 기업도 마찬가지다. AI를 후보물질 탐색에 먼저 적용하고, 실험 결과를 다시 학습시키면 탐색 정확도가 높아진다. 초기에는 보조 도구에 그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연구 방향을 제안하고 실험 우선순위를 정하는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다.
따라서 AI 경쟁력은 작게 적용하고, 결과를 측정하고, 다시 학습시키는 반복 구조를 얼마나 빨리 만드는지가 핵심이다. 이 반복이 빠른 기업은 데이터와 경험이 누적되며 경쟁력이 커지고, 늦게 시작한 기업은 같은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축적된 학습량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AI+반도체+산업’ 결합…한국의 기회
하사비스는 이번 방한 기간 공개 대담과 인터뷰에서 한국의 산업 기반에도 주목했다. 반도체와 제조 역량을 갖춘 국가라는 점에서 AI 확장에 유리한 구조라는 평가다.
AI는 더 이상 소프트웨어 중심 산업이 아니다. 반도체, 데이터, 산업 현장이 결합된 복합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거대 모델을 학습·운영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인프라가 필요하고, 실제 부가가치는 제조·바이오·에너지·물류 등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AI 경쟁이 알고리즘 경쟁을 넘어 반도체, 데이터, 산업 적용 능력이 결합된 복합 산업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와 제조업 기반이 강하고, 자동차·조선·전자·배터리·바이오 등 AI를 적용할 수 있는 산업 현장도 폭넓게 갖추고 있다. AI가 산업 현장의 데이터를 학습해 공정 개선, 설계 최적화, 품질 관리, 신제품 개발로 이어지는 단계로 진화할수록 한국의 제조 기반은 중요한 경쟁 자산이 된다.
특히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인 반도체는 한국이 이미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연산 성능과 전력 효율이 중요해지고,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저장 능력 역시 경쟁의 핵심이 된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와 첨단 제조 역량을 가진 한국 기업들이 AI 생태계에서 단순 부품 공급자를 넘어 핵심 인프라 제공자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뜻한다.
또 다른 강점은 산업 데이터다. AI는 일반 데이터를 넘어 현장성이 높은 데이터와 결합할 때 가치가 커진다. 제조 공정, 설비 운영, 품질 검사, 물류 흐름, 에너지 사용량 등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는 쉽게 복제하기 어렵다. 한국 기업들이 이 데이터를 AI 학습 구조와 연결할 수 있다면, 단순 자동화를 넘어 설계 혁신과 생산성 고도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반도체와 제조 기반이 강하더라도 이를 AI 모델, 데이터 활용 체계, 소프트웨어 역량과 결합하지 못하면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종속될 수 있다. 결국 한국의 과제는 하드웨어 경쟁력을 바탕으로 산업별 AI 적용 모델을 얼마나 빨리 만들고 확산하느냐다.
런던 킹스크로스 인근 딥마인드 본사 건물. [출처=게티 이미지]
AI 격차 확대…중소기업 전략 전환 필요
이 같은 변화는 필연적으로 기업 간 격차 확대를 동반한다. 자기학습 기반 AI는 단순 도입형 기술과 달리 초기 투자, 데이터, 인재가 동시에 집중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연산 인프라와 고급 인력, 그리고 지속적으로 축적되는 산업 데이터를 갖춘 기업일수록 학습 속도가 빨라지고, 그 결과는 다시 성능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이 구조에서는 선도 기업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먼저 AI를 도입해 현장 데이터를 축적한 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모델 성능과 의사결정 정확도가 높아지고, 이는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 설계 혁신으로 연결된다. 반면 후발 기업은 같은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축적된 데이터와 경험의 격차를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다. 결국 동일한 AI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성과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플랫폼 의존 구조가 강화될 가능성도 크다. 자체 AI 역량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글로벌 빅테크가 제공하는 AI 플랫폼이나 솔루션에 의존하게 되고, 이 경우 데이터와 기술 주도권이 외부로 넘어갈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뿐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반의 종속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이 같은 환경에서 중소기업의 전략은 현실적으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대규모 투자와 인재 확보가 필요한 자체 AI 개발 경쟁에 뛰어들기보다는, 검증된 플랫폼을 활용해 빠르게 적용 범위를 넓히고 성과를 축적하는 접근이 요구된다. 동시에 산업별로 차별화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산 공정, 고객 수요, 품질 관리 등 현장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는 쉽게 대체되지 않는 경쟁 자산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AI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해 자사 데이터와 결합시키고, 반복 학습 구조로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플랫폼을 활용하되 데이터 주도권은 유지하고, 특정 산업 영역에서 강점을 축적하는 전략이 향후 격차 확대 국면에서 생존과 성장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요한 것은 방향”…정책의 초점 이동
하사비스는 강연에서 “AI 황금시대에 진입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정책적 시사점으로 이어진다. 규제 강화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AI를 어디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라는 산업 전략이다. AI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에서 정책의 초점이 단순히 규제를 강화할 것인지, 완화할 것인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핵심은 AI를 어떤 산업과 공공 영역에 우선 적용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안전장치와 책임 체계를 마련할 것인지에 있다.
특히 AI가 생산성 향상 도구를 넘어 연구개발, 제조 설계, 신약 개발, 에너지 최적화 등 산업 경쟁력의 기반으로 이동하고 있는 만큼, 정부 정책도 산업 전략과 결합될 필요가 있다. 단순한 기술 지원이나 실증 사업을 넘어, 국가적으로 AI 적용 우선순위를 정하고 기업들이 데이터를 축적·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제조업에서는 공정 데이터와 품질 데이터를 AI가 학습할 수 있도록 표준화와 데이터 연계 체계가 필요하다.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연구 데이터 활용과 개인정보 보호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고, 에너지·인프라 분야에서는 안정성과 보안성을 전제로 AI 기반 운영 최적화를 추진해야 한다. 분야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규제나 지원으로는 AI의 산업적 효과를 충분히 끌어내기 어렵다.
또한 AI 활용 방향은 중소기업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대기업이나 글로벌 플랫폼 기업만 AI 전환의 혜택을 가져갈 경우 산업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중소기업이 활용 가능한 AI 플랫폼, 산업별 데이터 인프라, 현장형 실증 기회, 전문 인력 지원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이는 AI 격차를 줄이는 동시에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반이 된다.
결국 AI 정책의 핵심은 ‘허용할 것인가, 막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산업이 어떤 문제를 AI로 풀 것인지 정하는 데 있다. AI를 단순한 기술 트렌드로 볼 것이 아니라 제조 혁신, 과학기술 경쟁력, 공공 안전,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과 연결하는 산업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사비스의 발언은 AI 시대의 정책 경쟁력이 규제의 강도보다 적용의 방향성과 실행 구조에서 갈린다는 점을 보여준다.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는...
구글 딥마인드 CEO이자 세계 인공지능(AI) 연구 흐름을 이끌어온 대표적 과학자·기업가다. 2010년 영국 런던에서 AI 연구기업 딥마인드를 공동 창업했고, 2014년 딥마인드가 구글에 인수된 뒤에도 연구조직을 이끌며 글로벌 AI 개발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다.
그의 이름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다. 하사비스가 이끈 딥마인드는 바둑 AI 알파고를 통해 인간 최고 수준의 직관과 전략이 요구되는 영역에서도 AI가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사건은 AI가 단순 계산이나 패턴 인식을 넘어 복잡한 문제 해결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알린 상징적 장면으로 평가된다.
하사비스의 관심은 이후 게임을 넘어 과학 분야로 확장됐다. 구글 딥마인드는 단백질 구조 예측 AI인 알파폴드(AlphaFold)를 통해 생명과학 연구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AI가 생산성 도구를 넘어 신약 개발, 바이오 연구, 기초과학 등 지식 발견의 인프라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그는 AI를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지적 능력을 확장하는 도구로 바라본다. 알파고 이후 하사비스가 강조해온 메시지도 이와 맞닿아 있다. AI의 본질은 더 빠른 자동화가 아니라, 인간이 풀기 어려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탐색하고 해결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사비스는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동시에, AI를 산업과 과학의 핵심 인프라로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된다. 최근 논의되는 범용 인공지능(AGI), 자기학습 AI, 과학 AI의 흐름도 상당 부분 그가 이끌어온 연구 방향과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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